절망을 해부한다는 것
인턴기록은 2017년 인턴생활을 하면서 네이버 블로그에 기록해 두었던 내용을 이 공간으로 옮기면서 현재 생각이 바뀐 부분들을 추가하였습니다. 추가된 내용이 있을 경우 푸른색으로 적었습니다.
응급실 불빛 아래에서

앰뷸런스의 불빛만이 요란하게 깜빡일 뿐, 정작 환자는 아무 말이 없는 경우가 있다. 환자의 얼굴에는 체념이, 몸에는 싸늘한 흔적이 남아 있다. 우리는 그 몸을 만지며 심장을 누른다.
도착했을 때 이미 환자분이 사망했음을 알지만 우리는 보호자가 도착할 때까지 심장을 누른다. 뼈가 부서지는 감각이 손끝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계속 누른다. 남겨진 보호자에게 해줄 수 있는 우리의 마지막 최선이기 때문이다.
지난 한주는 자살로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가 참 많았다.
한 분은 목을 었다가 응급실에 실려왔는데 이미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DOA 상태였다. (DOA, 병원 도착했을 때 이미 사망했다는 의미) 다른 한 분은 4층에서 뛰어내렸는데 마찬가지로 이분도 DOA였다.

자살을 시도했는데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온 여성분도 있엇다. 정신과 진료를 보는 20대 여성인데 수십 알의 약을 퐁퐁으로 추정되는 세재와 함께 마시고 왔다. 세제를 마시면 erosive esophagitis의 위험성과 그로 인한 합병증으로 perforation의 위험성까지 있기 때문에 응급을 요한다. 약물 중독까지 겹쳐 있었고 응급내시경도 필요하여 결국 약물 중독을 전문적으로 볼 수 있는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절망을 해부한다는 것
퇴근길에 병원을 나서면 문득 생각한다. “그 환자는 마지막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의사는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지만, 하지만 가끔은 죽은 사람에게 붙잡힌다. 그들이 남긴 공허함이 마음 한편에 파문처럼 번진다.
무엇이 그들을 그 끝으로 몰았을까?
무엇이 그렇게 버거웠을까?
희망이 단 한 줄기라도 보였다면, 그들은 과연 그 선택을 했을까?

남들보다 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삶이었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자살 환자를 보는 일은, 누군가의 절망을 해부하는 일과 같다. 그들은 싸우지 않은 게 아니라, 더는 싸울 이유를 찾지 못했던 사람들이지 않았을까?

